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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논란이 많았던 베네딕토 9세 이야기
    Info. history 2024. 5. 4. 16:03

    베네딕토 9세(1012년경-1056년경)

    중세 가톨릭 교회의 교황으로, 역사적으로는 매우 논란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교황직을 세 번이나 차지한 인물로, 이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이례적인 사례 중 하나입니다. 베네딕토 9세는 그의 교황 시기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와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교황으로서의 책임과 권한을 부패하고 남용했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직자들에게 사적인 생활을 유지하도록 허용하고, 교황직을 얻기 위해 뇌물을 준 죄인을 용서하는 등의 논란적인 행동을 했다고 비난받았습니다.

     

    또한, 베네딕토 9세의 세 번의 교황직 취임은 당시의 정치적인 갈등과 각종 악순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교황직 취임은 로마와 비롯한 각종 권력의 혼란 속에서 이루어졌고, 그의 행동과 결정은 중세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격변기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따라서 베네딕토 9세는 중세 가톨릭 교회의 역사에서 부패와 비난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의 통치는 중세 유럽의 정치적, 종교적 변화와 갈등을 반영하며, 그의 역사적 평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입니다.

     

    교황 베네딕토9세 부패
    교황 베네딕토9세 부패 /  © Getty Images

     

    준비되지 않은 어린 교황

    베네딕토 9세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투스쿨룸의 테오필락투스로, 전임 교황 베네딕토 8세와 그의 후계자 요한 19세의 조카입니다. 1032년에 이탈리아의 유력 가문인 투스쿨라니 가문에 의해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테오필락투스는 교황직을 맡는 것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에 교황으로 즉위한 베네딕토 9세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의 교황직 재임 초기부터 폭동과 불안이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9세의 행동은 비상식적이었고, 그의 교황으로서의 역할에 부적합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라테라노 궁전에서는 수상한 행동과 소란이 빈번했으며, 그의 부도덕한 행위와 방탕한 삶은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의 교황직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혐오와 비난을 받았으며, 심지어 악마와의 결탁을 비난하는 소문도 퍼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들은 베네딕토 9세의 교황직 초기부터 불안정하고 논란이 많은 시기였음을 보여줍니다. 그의 교황으로서의 행동과 결정은 중세 유럽의 교회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생애와 이야기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입니다.

     

    성직 매매

    베네딕토 9세(베네딕토 6세)는 중세 시대의 교황으로, 1032년부터 1045년까지 교황직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교황 생활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방탕한 행동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베네딕토 9세는 교황직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데에 주목되었습니다.

     

    성직 매매와 같은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로 유명했으며, 이는 교황의 권위를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베네딕토 9세는 세속적인 즐거움을 쫓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흑마법과 불법적인 행위를 포함한 추악한 행동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교황으로서의 적합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패와 방탕한 행동으로 베네딕토 9세는 로마와 교회 내부에서의 맹렬한 비난과 불만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특히 헨리 3세와 같은 권력자들의 분노를 자아내었습니다.

     

    헨리 3세는 베네딕토 9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교황직에 대한 경멸로 인해 그를 교황직에서 즉각적으로 퇴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중세 시대의 교회와 권력 구조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베네딕토 9세의 부패한 행동은 후세에도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의 교황직에서의 비윤리적인 행동은 교회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의 퇴출은 중세 유럽의 정치적 상황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네딕토9세 교황자리에서 쫓겨나다

    1047년 11월 8일, 베네딕토 9세가 교황직에 재임하며 전례 없는 제3대 교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황청의 부패에 대한 분노와 경멸로 헨리가 그를 퇴출시키기 위해 라테라노 궁전에서 베네딕토 9세를 몰아내었습니다.

     

    1048년 7월 17일, 토스카나의 보니파시오가 헨리의 명령을 받아 베네딕토 9세와 대립하였습니다. 보니파시오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 출신으로, 베네딕토 16세는 추방되고 페드로 성좌 옆의 영향력은 사라졌습니다.

     

    베네딕토 9세의 운명은 로마 남동쪽 20km 떨어진 그로타페라타 마을로 추정되며, 교황직을 포기하고 수도원에서 참회 생활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수도원 아래에는 교황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베네딕토 9세는 교황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로 남고, 아마도 가장 부패한 교황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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