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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 정권의 건축가이며 히틀러의 측근, 알베르트 슈페어 그의 자서전
    Info. history 2024. 5. 9. 12:51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나치 독일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특히 그의 건축적 업적과 나치 정권의 국가인프라스트럭처를 관리하는 능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905년에 독일의 막스 베르에게 태어났으며,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슈페어는 아돌프 히틀러와의 만남을 통해 나치 정권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히틀러는 그의 건축적 재능과 조직력을 인정하고, 그를 나치 정부의 공공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시켰습니다. 1937년에는 독일의 국가건축가로 임명되었습니다.

     

    슈페어는 나치 정부의 주요 건축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그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베를린의 국가 지휘본부인 라이히스콜레(Reich Chancellery)의 건축이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히틀러의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그의 권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슈페어는 나치 정부의 무기 생산 및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노동 강제 수용소와 관련된 일들에도 연관되어 있었는데, 이로 인해 그의 역사적 역할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슈페어는 나치 정부의 전범으로 심판을 받았으며, 여러 가지 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회한하고 나치의 범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히틀러와의 관련성과 나치 정부의 활동에 대한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책임을 공개했습니다. 슈페어는 1981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역사적인 영향과 역할은 계속해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알베르트 슈페어와 히틀러
    알베르트 슈페어와 히틀러 /  © Getty Images

     

    슈페어의 범죄

    알베르트 슈페어는 나치 독일의 건축가 및 군수장관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무기 생산과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특히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 정부의 무기 생산에 노예 노동자를 동원하고 전쟁 포로를 비롯한 수많은 인원을 가혹하게 다룬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슈페어의 주요 범죄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전쟁 포로 및 노예 노동자 동원: 슈페어는 나치 독일의 무기 생산과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을 위해 수많은 전쟁 포로와 노예 노동자를 동원했습니다. 이들은 가혹한 조건에서 일을 시키고 불인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사망했거나 학대를 당했습니다.
    • 전쟁 범죄 및 인권 침해: 슈페어는 전쟁 포로 및 노예 노동자를 포함한 많은 인원들에게 인권을 침해하고, 국제법상의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이들을 가혹하게 다루고, 불인도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슈페어는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이러한 범죄를 인정했으며, 그의 책임을 인정한 데 대한 참회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직접적인 가혹 행위에 대해서는 부인했습니다. 재판부는 그의 책임과 참회의 정도를 고려하여 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습니다. 슈페어는 이러한 범죄로 인해 수감되었지만, 사형을 면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회한과 책임을 인정하는 자서전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슈페어의 자서전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서전인 "인피니트 챔버(Inside the Third Reich)"은 그가 나치 독일의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시기부터 그의 전범 재판 이후까지의 경험과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나치 독일의 내부에서의 경험과 그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제공하면서도, 나치의 범죄와 자신의 책임에 대한 공개적인 회고와 참회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자서전은 슈페어가 나치 정권의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경험과 그가 히틀러와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건축적 업적과 나치 정부의 인프라스트럭처 관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후회를 나타냅니다. 슈페어는 또한 나치 독일의 몰락과 전쟁의 비극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인정하고 나치의 범죄에 대한 참회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비판가들은 이 자서전을 그의 "가장 두꺼운 자기변명" 으로 해석하며, 그가 나치 정부의 범죄와 인류에게 가한 상처에 대한 진정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시도로 보았습니다. 또한 슈페어가 나치 지도부의 '집단 책임'을 언급하면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고자 하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이 자서전은 슈페어가 나치 독일의 내부에서의 역할을 설명하고, 그의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의 행동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참회가 충분한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라이히스콜레(Reich Chancellery)의 건축

    라이히스콜레(Reich Chancellery)는 나치 독일의 중심이자 아돌프 히틀러의 정부 본부였습니다. 이 건물은 1938년에 완공되어 나치의 국가 기관이 밀집한 도심 지역인 베를린의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라이히스콜레는 프로이센 왕국 시절에 프랑크푸르트의 백작궁(Counts' Palace)을 기반으로 하여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치 정부는 이를 확장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히틀러의 거주지로 사용할 목적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이 건물은 나치 독일의 권력과 히틀러의 지배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상징물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작업실과 개인 공간이 위치한 곳으로, 나치의 무서운 힘과 독재적 지배력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또한 라이히스콜레는 나치의 이데올로기와 독재정치의 집중된 상징으로 작용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라이히스콜레는 파괴되었고, 현재 그 자리에는 베를린의 중심부에 위치한 잔해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치 독일의 건축적 유산 중 하나로서 그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이히스콜레는 나치의 권력과 히틀러의 독재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는 중요한 시각적 상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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